Getting the transcript…
By 채널ANSer [채널앤써] · 383 caption lines · Watch on YouTube
주님의 온기로 나를 채우는 시간 J [음악] on 샬롬 제온 김민혜입니다 여러분 제가 넌센스 퀴즈를 내울 테니 맞춰 보세요 성경의 안학 자손 아시죠 안학 자손들의 아내를 뭐라고 부를까요 정답은 [음악] 학내 또 다른 문제를 내볼게요 인류 최초로 영어를 쓴 사람은 정답은 아담 하와에게 How are you 설마 라디오 들으시면서 저한테 돌 던지시는 건 아니죠 워워 캄다운 하시고요 넌센스 퀴즈니 저희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한 선교사님이 이렇게 하이 개그를 좋아하셔서 저는 하이 개그라고 부르는데 아마 보통은 아제 개그라고 하겠죠 어 그래서 넌센스 퀴즈를 가끔 내세요 저는 듣다가 너무 웃겨서 아 라디오에서 한번 이야기하겠다 생각했어요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즘 이렇게 어이없게도 웃으시라고 용기는 보았습니다 마지막 퀴즈를 낼게요 조선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서서평 선교사님 있니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이세요 오늘은 서서평 선교사님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이 어떻게 조선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셨는지 그 삶으로 한번 들어가 [음악] [음악] 볼까요 1912년 조선이 일제치하에서 건을 빼앗지 2년째 되던 해 고통을 받고 있던 조선의 영혼을 위해 호를 단신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는 코리아 마루호의 몸을 실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미국 남 장로교회에서여 간호사로 파송받아 선교사로 조선땅을 밟은 32살의 독일개 미국인 서서평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음악] 선교사였습니다 그녀는 1912년 3월 중순에 도착하여 목포 선교부에 소속되었고 전라도 지역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1919년부터 광주 선교로 소속된 이후 1934년 6월 26일 소청할 때까지 광주의 딸로 소외된 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에 도착해서 먼저 조선 말과 조선 풍습을 익히면서 그녀의 이름도 스스로지었습니다 자신의 급하고 모한 성격 말고 천천히 평온하게 오직 주님을 믿고 따라가자는 뜻에서 서이라지었습니다 서평은 조선인들의 삶을 가까이 살피기 위해 조랑말을
타고 자주 전국을 순회했다 조선인들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서평은 화순에서 다양 지리산 인근 순창까지 20일간의여 신생아에서 노인들까지 한병 환자를 포함해 온갖 질병에 걸린 500여명을 돌보았습니다 조선의 당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큰 년 작은 년 또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명을 따 지리산 등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그런 수백명의 여성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렇게 1년에 100일이 넘게 수해를 다닐 때면 서저 선교사 온 몸에 들러붙은 일을 잡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간호사 출신으로 오게 낸 서서 평은 제중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간호하던 중 특별히 한생 환자들을 정성껏 돌았으며 길에서 여자 한생 환자나 거인들을 만나면 집에까지 데리고 와서 목욕을 시키고 따뜻한 밥을 먹이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나누어 입혔기 때문에 그녀는 평생 두 을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엄동 안에 한샘병 환자 두 사람이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담요를 가져다가 둘로 나누어 하나씩 덮어 주기도 했고 언제나 굶주린 사람에게 자기에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늘 마음을 다해 섬겼던 서서평 선교사가 남긴 업적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 1921년 운동에 위치한 현 배운동 교회의 전신인 진다리 교회와 봉선 교회를 세웠으며 1922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일교회에 전신인 금정 교회의 부인 조력 회여 신도회를 조직하여 믿음의 훈련과 교회 봉사 활동에 앞장서게 했습니다 또한 국내 간호 분야에도 지대한 업적을 남겨 1923년 조선 간호협회 결정을 주도하여 초대회 장에 선임되었고 그로부터 11년 동안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협회 발전을 위해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많은 섬김으로 조선을 섬겼던 서서평 선교사에게 시련도 없지 않았습니다 1929년 조선 간호부 협회를 세계 협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갔던 미국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네 고리 내 딸 이라 하기에 부끄럽다며 서서 평을
내쳤습니다 사실 그 일은 서서 평에 어머니로부터 두 번이나 버림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자평이 세살 때 어머니는 서평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그녀는 미국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을한 잘지내는 듯하다가 서서이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종을 하자 어머니는 집안 망신 이라며 서을 집에서 내쫓은 것입니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 다칠 내린 서평은 수양딸 13명과 나환자의 아들 한명 등 14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이 기은 조선의 어머니로 평생 살았습니다 생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서서 평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조선의 영혼들에게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데려다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시집 가도록 돕고 혹 시집 갔던 곳에서 쫓겨나온 일이라도 있으면 다시 그를 받아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까지 끝없는 사랑으로 자신을내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또 자비로 3년제 학교를 설립해 여성들의 문맹 퇴치와 계몽에 나섰습니다 그녀의 미국인 친구인 니일의 원조를 받아 양님 뒷동산의 붉은 벽돌로 3층 교사를 짓고 니일 양의 이름의 발음을 따서 한자로 이일학교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교이며 현 한일 장신대의 전신을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글 말살 정책이 행 중인 일제 치아에서 간호부 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 모두 한글로 편저 아도록 고집했고 조선 사람들에게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주려 [음악] 했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는 당시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금주 금연 운동을 전개했는데 직접 금주 동맹을 만들어 상가가 밀집한 지금의 충장로와 시장에서 계몽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인신매매 반대 운동을 펼쳤으며 당시 본 부인 외에 첩을 들이는 축적 제도와 여성의 성을 매매하는 공창제도 폐지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때로는 만주의 홍등가에 팔려가는 19세 소녀를 다시 구해오기도 하고 많은 창녀들의 빛을
갚아주고 새 삶을 찾도록 도왔으며 또 그가 설립한 이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33년 서서평 강제 거세 등으로 한샘병 환자들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는 일제 총독부를 대항해 당시 조선인 목회자 등 동역자들과 50여명의 한생 환자들과 함께 서울에서 행진을 했습니다 소식을들은 전국 각지 생병 환자들이이 행진에 합류했습니다이 행진에 함께한 한생 환자들의 숫자는 530여 명에 달했습니다 도 두 손을 들게 되었고 소록도 한생 환자 요양 시설과 병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서에게 나환자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서평은 조선인으로 살기를 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역 17년 만에 처음 맞이한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면서 쓴 편지에 서구문명을 나대로 이상화 까닭 과거에는 선들의을 제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한게 사실이지만 사실 조선에는 서양인들이 지나치기 쉬운 아름다운 전통과 사랑 문학적으로 탁월하거나 훌륭한 것들이 너무 많다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부르신 방법대로 조선으로 돌아가 기꺼이 조선의 짐을 덜어 줄 것을 다짐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1912년 조선의 일제 치아에서 혹한 시련을 거치던 때에이 땅에 첫발을 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22년 조선을 사랑하고 섬겼던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 서서평 그녀는 혈통은 독일 태생이지만 조선인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하나의 미알이 되었습니다 1934년 양림은 통곡 소리와 눈물로 가득찼습니다 그의 6월 26일 새벽 4시 서평은 54세를 일기로 사랑과 헌신의 생일을 마쳤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가는 길에 양딸 13명과 이일학교 학생들 그리고 그가 돌봐준 가난한 자와 생병 환자들이 따랐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하는 소리가 곳곳에 쏟아졌습니다 장례식은 광주광역시 최초 사회장으로 12일 동안 어졌고 많은 지방 인사와 기독교인들은 물론 많은 일본인들도 예복을 참석했습니다 서울 평양 부산 등 국내 여러 곳에서 식장이 가득차게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했습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몸안의 장기는 모두 의학 실험용으로
[음악] 기증되었습니다 그녀의 재산 한 정리해보니 덮은 이불 반장과 동전 칠전 강이 가루 두호 전부였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자선과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 평양 서거라 제목과 재생한 예수라는 부제로 그의 죽음을 대서 특별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양님 뒷동산에 묻혀 있으며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침대 밑에 종이 한 장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음악] 섬김이다 오래전 수선 교단 소식지에 올라왔던 서서평 선교사님에 대한 글을 여러분께 읽어 드렸는데요 서서평 선교사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나오기 전이어서 그런지 저는 이글을 통해 서서 선교사님에 대해 처음게 되 거 같아요 조선에 오신 많은 선교사들 중에 이렇게 한 평생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조선인으로 살다 가신 선교사님도 계셨구나 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요 저는 특별히 한국 이름을 자신의 급하고 못한 성격 때문에 서서 평이라고 지었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왜냐하면 저도 급하고 못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제 2의 한국 이름으로 서서 평으로 지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긴 했답니다 그런 자신의 성향과는 다르게 서서평 선교사님이 조선 사람들에게 행한 일들은 사랑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어요 [음악] 선교사님 안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급하고 모한 성격 마저도 뛰어넘어 그 자신을 죽는 데까지 내어주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생각이 드니까 저에게도 소망의 빛이 비치더라도 서서평 선교사님 침대 밑에서 발견된 종이에 적힌 성공이 아닌 섬김이라는 글귀가 선교사님이 평생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정적으로 [음악] 달려오셨어요 저도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선교사가 되었지만 제가 얼마나 섬기는게 불가능한 사람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깨닫게 돼요 섬기기보다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성공과 열매를 보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이 훨씬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선교사님의이
글귀가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섬김의 종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 또한 종과 같이 영혼들을 섬기는 선교사로 더욱 살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만두 님들 라디오를 하면서 저는 계속 코너로 몰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자리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정말 복음이 실제 될 수 있는 자리로 주님이 저를 자꾸 몰아 가시네요 만두 님들 같이 가요 마지막으로 나의 기도라는 찬양 들려드리면서 저는 인사드릴게요 섬김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기신 주님을 본받아 마음 다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 만두 님들 되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제의 요네의 [음악] 기인해였습니다 하나님 나의이 마음을 받아주소서 나의 평생에 소원을 들어 [음악] 주소서 가난함을 라야 부로 함께하고 낮아짐을 내 명예로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고난 중에 주를 높이게 하고 잠잠히 행동해 하며 나의 죄악 중에 항상 십자가 보게 [음악] 하소서 혜로 [음악] 살게 하소서 [음악] 하나님 나의 마음을 받아주소서 나의 [음악] 평생에 소원을 들어 주소서 가난함을 나의 후로 삼게 하고 낮아지을 내 명예로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며 고난 중에 주를 높이게 하고 잠잠히 행동 케 하며 나의 죄악 중에 항상 십자가 보게 하소서 [음악] 은혜로 매일 살게 하소서 가난함을 나의 부로 삼게 하고 낮아지을 내명의로 섬기는 것을 즐거워 [음악] 며 고난 중에 주를 높이게 하고 잠잠히 행동해 하며 나의 죄악 중에 항상 십자가 보게 하소서 [음악] 은혜로 매일 살게 [음악] 하소서 그은혜로 매일 살게 하소서 [음악] amen n